누구나 한 번쯤 초등학교 방학숙제로 ‘재활용품 만들기’를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개학이 다가오면 다 먹은 우유갑은 저금통이 되고, 페트병은 연필꽂이가 돼 교실 뒤편에 전시되곤 했다. 이처럼 버려진 것들에 디자인을 가미시켜 더 높은 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재탄생 시키는 것을 ‘업사이클링(up-cycling)’이라고 한다. 최근 들어 업사이클링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과연 업사이클링의 매력이 무엇이길래 디자이너와 소비자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것일까?

리사이클링을 넘어서

업사이클링이란 ‘업그레이드(upgrade)’와 ‘리사이클(recycle)’의 합성어다. 업사이클링이라는 용어는 1994년 독일 디자이너 리너 필츠(Reiner Pilz)에 의해 처음 소개됐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업사이클링이란 낡은 제품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처럼 업사이클링은 폐기물을 새롭게 디자인해 더 높은 가치의 상품으로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폐기물을 단순 재사용하는 리사이클링과 차이점을 지닌다.
업사이클링은 기존 재활용 방식이 가진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생겨났다. 예를 들어 기존의 재활용 방식으로 버려진 플라스틱병을 재생하기 위해서는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을 혼합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불가피하게 발생하고 재생된 플라스틱병은 질 낮은 합성 물질로 변하게 된다. 이렇게 물질이 재활용되는 과정에서 기능과 품질이 더 낮아지는 현상을 다운사이클링(down-cycling)이라고 한다. 업사이클링의 개념을 확립했다고 알려진 미국의 건축가 윌리엄 맥도너(William McDough)와 독일 화학자 미하엘 브라운가르트(Michael Braungart)는 그들의 저서 <요람에서 요람으로>에서 이러한 다운사이클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들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업사이클링 디자인을 통해 창의적∙친환경적인 상품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트럭 방수천으로 가방을 만드는 대표적인 업사이클링 브랜드 ‘프라이탁(FREITAG)’은 이러한 업사이클링의 가치를 잘 실천하고 있는 기업 중 하나다. 그들은 가방을 만들 때 빗물로 방수천을 씻는다. 최근에는 버려진 후에도 박테리아에 의해 자연 분해되는 F-ABRIC이라는 신소재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처럼 재활용에서 한발 더 나아가 쓰레기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가치를 높이는 것이 바로 업사이클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소비자를 사로잡는 스토리텔링

같은 물건이 있을 때 소비자는 이야기를 가진 상품에 눈길을 돌린다. 업사이클링 산업에서도 스토리텔링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한국업사이클디자인협회에 따르면 업사이클링은 윤리적 소비를 강조하여 헌 소재에서 새 가치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이야기를 찾아 알리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업사이클링 산업에서 스토리텔링은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만들어지는 과정이 얼마나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지, 혹은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했을 때 기업이 어떤 식으로 사회에 환원하는지를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캄보디아 업사이클링 패션잡화브랜드인 ‘스마테리아(SMATERIA)’는 캄보디아의 여성 빈곤문제를 스토리텔링의 주제로 삼았다. 직원의 90%가 캄보디아 여성으로 이뤄진 스마테리아는 지역 여성들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 작업자들의 정당한 근로조건과 권리를 보장한다. 그 결과 현재 스마테리아는 한국을 포함한 총 15개의 국가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스토리텔링에 성공한 또 다른 예로는 국내 업사이클링 브랜드 ‘두바퀴희망자전거’가 있다.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두바퀴희망자전거는 폐자전거를 이용해 책상, 조명과 같은 인테리어 소품을 제작한다. 한 가지 독특한 점은 직원의 90%가 노숙인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두바퀴희망자전거는 버려진 자전거에 새 생명을, 그리고 노숙인들에게는 새 인생을 선물한다는 이야기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갔다. 이는 소비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는 원동력이 됐고 현재는 연 매출이 5억 원에 달한다.

‘나눔의 공간’에서 업사이클링을 함께 하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주말의 명동성당. 이곳 지하에 업사이클링을 보고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마련돼있다.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이하 래코드)’ 에서 운영하는 ‘나눔의 공간’이다. 래코드는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의 업사이클링 브랜드로 버려지는 의류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됐다. 3년 차 재고 의류와 군용, 산업폐기물로 패션 제품을 생산하던 래코드는 자신들의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2014년 명동성당 지하에 나눔의 공간을 마련했다. 나눔의 공간에서는 환경과 관련된 다양한 도서와 영상, 국내외 작가들의 업사이클링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주말마다 공방 수업을 통해 업사이클링을 직접 느끼고 체험할 수도 있다. 래코드팀 최유리 매니저는 나눔의 공간의 취지에 대한 질문에 “강요된 분위기가 아닌 자연스럽게 좋은 공간에 있으면서 우리가 원하는 가치를 공유하고 싶어서 (시작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 매니저는 “재활용에 대한 인식을 가치가 좀 더 무한할 수 있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 (업사이클링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 업사이클 라이브러리, 업사이클 갤러리, 테이블로 구성된 나눔의 공간.

나눔의 공간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먼저 업사이클 라이브러리(Up-cycle Library)는 환경과 자연, 윤리적 패션 및 소비와 관련된 책들과 다큐멘터리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업사이클 라이브러리의 책들 사이사이에 위치한 업사이클 갤러리(Up-cycle Gallery)에는 다양한 국내외 업사이클링 아트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마지막으로 나눔의 공간 한가운데 책장으로 둘러싸인 기다란 테이블에서는 공방 수업인 업사이클 워크샵(Up-cycle Workshop)이 열린다. 매주 주말 진행되는 업사이클 워크샵은 ‘토요일 원데이클래스’, ‘일요일 나눔공방’으로 구성되며, 래코드 블로그를 통해 예약하면 직접 업사이클링을 체험해 볼 수 있다. 래코드팀 최 매니저는 “각종 공방 수업을 통해 소비자들의 친환경 감수성을 키우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라며 “(나눔)공방으로 얻어지는 수익금으로 장애인, 미혼모, 저소득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의 클래스를 지원함으로써 나눔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취재를 간 2월 11일에는 ‘꿈을만드는공방’ 이경진 디자이너가 드림캐처 만들기 수업을 진행했다. 드림캐처는 나쁜 꿈을 쫓아 준다는 아메리칸 원주민들의 전통 공예품이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버려질 뻔한 재고 원단은 친구나 가족에게 선물해도 손색없을 예쁜 드림캐처로 다시 태어났다. 수강생들이 열심히 드림캐처를 만드는 동안 나눔의 공간을 지나던 많은 사람이 호기심을 가지고 발걸음을 멈췄다. 특수교육을 전공한 장예은(경기 안산시 27) 씨는 공방 수업에 참여한 후 “(학교로) 돌아가서 학기가 시작되면 공방에서 배운 내용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계획”이라며 “이런 것(업사이클링 공방수업)들이 홍보가 많이 돼서 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 업사이클 워크샵에서 드림캐처를 만들고 있는 모습. 최용훈 사진기자 choiyh@hgupress.com

일상생활에서 업사이클링을 실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버리기 전에 쓸모가 있진 않은지 한번 더 생각하는 것. 업사이클링을 소개하는 책이나 기사를 읽어보는 것. 정성 들여 만든 업사이클링 소품을 지인에게 선물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업사이클링이 될 수 있다. 환경처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 한 사람이 살면서 배출하는 생활 쓰레기는 약 55톤에 이른다고 한다.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업사이클링을 통해 환경을 보호할 뿐 아니라 어려운 이웃도 도울 수 있는 일석이조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변의 업사이클링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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