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간 가격표와 '1+1' 표시 등 뉴로마케팅 기법이 마트에 활용되고 있다. 사진 최주연 기자 choijy@hgupress.com

마트에 들어가기 전 꼼꼼히 쇼핑리스트를 작성한다. ‘필요한 물건만 사야지’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나 마트에 들어서자 ‘놓치면 후회’, ‘오늘만 특가’와 같은 문구가 발목을 잡는다. 애써 유혹을 뿌리치고 식품코너로 돌아서는데 직원 언니가 ‘지금 사시면 하나 더 드린다’라며 시리얼을 권한다. 어차피 필요했던 거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카트에 담는다. 화장품코너에서는 평소 좋아하던 브랜드의 신상 핸드크림도 담는다. 쇼핑을 마치고 계산대 앞에서 카드를 내밀기 직전, 집에 가는 길에 간식으로 먹을 소시지를 집는다. 영수증을 확인할 때마다 드는 생각. ‘언제 이렇게 많이 샀지?’ 도대체 마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머리에 무선 헤드셋 모양의 장치를 쓴 피실험자가 광고를 시청한다. 겉으로 보면 집에서 TV를 보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지만, 피실험자가 착용한 *EEG(뇌파) 측정장치는 초당 250회 이상의 뇌파를 수집하고 있다. 실험자들은 EEG 측정장치를 통해 15초의 짧은 광고 중에도 수시로 변화하는 피실험자의 감성적 반응을 관찰한다. 측정결과를 토대로 실험자들은 어느 장면에서 피실험자의 주의가 높아졌는지, 혹은 특정 인물의 등장으로 피실험자의 각성이 상승했는지를 알아낸다. 이렇게 얻어진 결과는 마케터에게 소비자 성향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것이 바로 뇌과학자와 마케터의 합작, 뉴로마케팅이다.

뇌와 마케팅의 만남, 뉴로마케팅

뉴로마케팅은 신경과학을 의미하는 뉴로(neuro)와 마케팅(marketing)의 합성어로, 소비자들이 시선을 보낼 때 뇌의 반응을 이용해 소비자들의 심리와 행동 방향을 알아내고 이를 마케팅에 응용하는 기술이다. 뉴로마케팅에 사용되는 뉴로리서치 기술에는 뇌파가 전달될 때 생기는 전기의 흐름을 측정하는 뇌파측정기와 눈길이 닿는 곳의 정보를 파악하는 시선추적기 등이 있다.
뉴로마케팅은 1975년 코카콜라와 펩시 각 한 컵의 맛을 비교하는 ‘Pepsi Challenge!’ 실험결과에 의문을 품은 한 의대생으로부터 탄생했다. 해당 실험에서 대중은 코카콜라와 펩시의 라벨이 붙어 있지 않을 경우 펩시가 더 맛있다고 느꼈지만, 둘의 라벨이 컵에 붙어 있을 경우 코카콜라가 더 맛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코카콜라라는 브랜드가 소비자의 무의식에 작용한 결과였다. 코카콜라의 마케팅이 소비자의 무의식에 영향을 끼치고, 맛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 것이다. 이후 하버드대학교 마케팅 교수 제럴드 잘트먼(Gerald Zaltman)은 1990년대에 소비자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그림에 대한 연상을 유도하는 잘트먼 기법(ZMET)을 고안했다. 잘트만 기법으로부터 시작한 뉴로마케팅은 발전을 거듭해 2002년, '브라이트하우스(BrightHouse)'라는 마케팅 회사에 의해 세상에 소개됐다.

한국에 상륙한 뉴로마케팅

현재 뉴로마케팅 연구는 주로 해외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국내 사례도 점차 늘고 있다. 신현준, 이은주 씨의 『뉴로마케팅의 원리와 활용사례』에 따르면 뉴로마케팅이 한국에 소개된 건 2002년경이다. 국내 화장품 브랜드 아모레퍼시픽(이하 아모레)은 국내에서 뉴로마케팅 기법을 도입한 초창기 기업 중 하나다. 아모레는 2004년 색조화장시장에 뛰어들며 뉴로마케팅 연구를 실시했다. 아모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이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여성들에게 색조화장품 사진을 보여준 후 뇌를 관찰한 결과, 해외브랜드 제품은 소비자들에게 설렘과 몰입의 대상이 되는 반면 아모레 브랜드는 ‘오래된 연인’ 같은 친근한 이미지가 강했다. 해외명품브랜드와는 달리 아모레 브랜드 상품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중저가의 대중적인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아모레는 더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주력했고, 그 결과 국내 시판 브랜드 중 최초로 백화점 유통망에 진출했다.
뉴로마케팅은 제품의 이름을 짓거나 디자인을 구성하는 데 활용되기도 한다. 기아자동차의 준대형세단 K7은 뉴로마케팅의 결과물이다. K7은 알파벳과 숫자를 조합한 ‘알파뉴메릭(Alphanumeric)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알파뉴메릭 방식은 해외 자동차브랜드에서 주로 사용하던 방법으로 소비자에게 고급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지만, 기아자동차가 브랜드 이미지로 내세웠던 ‘젊은 감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우려가 있었다. 기아자동차 브랜드경영팀은 이러한 알파뉴메릭 방식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뉴로마케팅 조사기법을 택했다. 뉴로마케팅을 통해 소비자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숫자와 알파벳의 조합을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기아자동차로부터 뉴로마케팅 연구를 의뢰받은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는 한국인 100명과 한국 거주 3년 이상의 외국인 100명을 대상으로 시선추적, *fMRI 등의 기법을 실시했다. 그 결과 피실험자들이 K7이라는 차 이름에 대해 강한 선호를 느끼고 혁신적이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떠올린다는 것이 확인됐다. 2010년 6월 기아자동차의 K7은 동급인 현대자동차의 준대형세단 ‘그랜저’ 판매량의 2배를 기록하기도 했다.

소비자의 뇌를 보여주는 지도, 뉴로리서치

뉴로마케팅은 뇌 반응과 행동을 측정하는 뉴로리서치를 통해 이뤄진다. 뉴로리서치에는 fMRI와 EEG와 같이 뇌를 측정하는 방법이 있다. 뇌파를 측정하는 방식은 영상광고와 같이 순간적인 장면의 흥미도를 분석할 때 사용된다. 또한, 연구자들은 fMRI로 뇌 반응을 관찰해 소비자가 가지고 있는 브랜드에 대한 잠재의식이나 편견을 측정하기도 한다. 시선추적과 피부전도도같이 행동을 측정하는 방법도 뉴로리서치에 속한다. 연구자들은 시선추적 반응을 통해 소비자들이 제품 이미지를 인식하는 경로를 분석할 수 있다. 브레인앤리서치 비지니스팀 박정민 팀장은 “뉴로마케팅은 과학적 측정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개념들을 측정할 수 있다”라며 “(뉴로마케팅은 설문조사와 달리) 소비자의 시선이나 이동 경로와 같이 복잡한 정보를 데이터와 이미지로 도출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우리 곁의 뉴로마케팅

뉴로마케팅의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편의점과 마트에 숨은 뉴로마케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주말 오후 2시, 대형 마트에 들어선다. 마트는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카트를 끌고 쇼핑 대열에 합류한다. 필요한 것만 얼른 사고 나가려는데 마트에서 조용하고 느린 음악이 흘러나온다. 들어올 때만 해도 조급했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느린 음악에 따라 발걸음도 느려진다.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주방용품 코너로 들어서는데 ‘20% SALE’이라는 빨간색 문구가 눈을 사로잡는다. 같은 가격인데도 빨간색으로 쓰인 39,800원이 더 저렴해 보인다. ‘1+1’의 유혹은 간신히 뿌리쳤지만 ‘한정 판매’라는 문구에 여지없이 무너진다. 오늘이 아니면 저 상품을 다시는 사지 못할 것 같아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카트에 담는다. 시리얼을 사려고 여러 제품을 비교하는데 내 시선이 머무르는 중간의 제품들이 다른 제품보다 더 비싸다. 저렴한 제품은 높은 곳이나 제일 아래에 있다.
마트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가격표의 색깔, 제품들의 진열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오리콤 브랜드전략연구소 허웅 소장에 따르면 사람들이 자주 찾는 마트나 백화점은 뉴로마케팅의 집합체다. 매장 내 음악 속도는 소비자의 매장 체류시간에 영향을 미친다. 백화점에서는 느린 음악을 활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느린 음악을 틀게 되면 소비자는 매장에 오래 머무르고, 소비자가 오래 머무를수록 판매원은 더 많은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상품들의 가격표가 주로 빨간색인 것도 이유가 있다. 허 소장은 “빨간색은 소비자들에게 ‘가격파괴’의 기대를 줘 가격표에 시선이 고정되는 효과가 있다”라고 말했다. 판매율을 높이고 싶다면 소비자가 얻을 ‘이익’보다 소비자가 그 제품을 구입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손해’를 강조하는 것이 좋다. 소비자는 ‘1+1’으로 자신이 얻을 이익보다 ‘한정판매’되는 물건이 품절돼 사지 못했을 때 입는 손해를 더 크게 느낀다. 신경학적 관점에서 뇌는 이익보다 손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상품 진열에도 뉴로마케팅 기술이 숨어있다. 150~170cm 높이의 일명 ‘골드존’은 소비자들의 손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이다. 때문에 판매원은 이윤이 높은 상품들을 주로 골드존에 진열한다.

뉴로마케팅의 활용은 브랜드 마케팅에만 그치지 않는다. 뉴로마케팅은 대통령선거에 이용되기도 한다. 브레인앤리서치 비지니스팀 박 팀장은 “지난 대선과 이번 대선에서는 각 후보의 연설문과 토론 등에 대한 고객반응을 뉴로리서치로 분석하여 유권자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주는지 분석했다”라며 “17대 대선에서는 후보자의 복장에 대해 fMRI를 통하여 더 어울리는 복장을 검증하기도 하고, 미국에서는 지난 힐러리와 오바마의 경선에서 지지자들의 인식 차이를 보여주는 fMRI 조사를 수행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뉴로마케팅은 기업 마케팅부터 대선과 같은 정치 사회적인 분야까지 우리 생활 곳곳에 퍼져있다. 우리 삶과 점점 가까워지는 뉴로마케팅. 그 가능성은 어디까지일까?

*fMRI(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기능적 자기공명영상. 뇌 기능을 영상화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다. 뇌가 활동할 때 변화하는 혈류 안의 산소량을 측정해 뇌의 활성화한 부분을 보여준다.
*EEG(Electroencephalogram): 뇌파. 인간의 두뇌활동 반응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뉴로리서치에서는 소비자가 광고를 보거나 제품을 구입하는 동안 변화하는 뇌파를 측정해 소비자의 정신적 활동과 감성적 반응을 관찰한다.
 

저작권자 © 한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