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과 음식점, 학원들이 모여 빌딩 숲을 이룬 노량진 고시촌. 매년 새로운 이들이 꿈을 가지고 이곳을 찾는다. 공무원 지원율이 40%에 임박하고 매년 고시생의 자살 소식이 잇따라 들리는 우리 사회에서 노량진 고시촌은 고민의 집합소다. 노량진 고시촌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는 어떨까. 각자 다른 사연과 꿈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청춘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6월 공무원 시험을 앞둔 현재, ‘공무원 양성소’라고 불리는 노량진 고시촌 속 고시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무작정 노량진으로 떠났다. 기자가 보고 들은 노량진 고시촌의 풍경과 고시생의 삶을 전한다.

▲ 독서실, 고시원 등이 빽빽하게 들어선 노량진 고시원거리. 최용훈 사진기자 choiyh@hgupress.com

고시생이 모이는 ‘여기가 노량진’

오전 11시경, 노량진역에 도착한 후 노량진 고시촌과 가까운 3번 출구로 나섰다. 역에서 나와 느낀 노량진의 분위기는 여느 동네와 사뭇 다르다. 거리를 지나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트레이닝복 차림에 가방을 매고 있으며, 길가 도로변에 있는 큰 건물은 광고에서 봤음 직한 유명한 공무원 학원, 토익 학원들로 이뤄져 있다.
길을 건너 거리에 들어서니 노량진의 명물 ‘컵밥 거리’가 눈에 띈다. 컵밥뿐 아니라 샌드위치, 꼬치 등 길거리 음식들이 2~3천 원 정도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전국 최저가’라 적힌 길가 슈퍼마켓 물품의 가격은 시중 판매가보다 몇백 원가량 낮다. 컵밥 거리를 지나면 학원, 고시원, 음식점이 밀집된 고시촌 골목이 나온다. 학원은 경찰, 소방 공무원 실기시험을 위한 체력학원부터 면접학원까지 다양하다. 식권을 판매하는 음식점, 면접 사진관, 제본 가게, 스터디룸 등 고시생을 위한 시설도 즐비하다. 거리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역시 고시원이다. 조용한 고시원, 교통이 편리한 고시원, 햇빛이 들어옴에 따라 나뉘는 외창, 내창방 등 고시원을 홍보하는 문구도 가지각색이다. 거리를 걸으면서 고시원의 엄숙한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다. ‘조용히 해주세요. 시험을 앞두고 있습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고시원 건물 벽면에 붙어있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이른 점심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인다. 이어폰을 낀 채 포장 음식을 들고 지나가는 이에서 음료를 손에 쥐고 친구와 대화하며 지나가는 이들까지 다양하다. “한동신문사에서 나왔습니다. 노량진 르포 기사를 준비 중인데 인터뷰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니요, 바빠서.” 수험생 한 명이 기자를 빠르게 지나쳐간다. 다가오는 반응은 차갑다. 대답 없이 지나가는 사람도 많다. 매년 두세 번 정도 치러지는 공무원 시험. 6월 시험을 앞두고 노량진 고시촌의 분위기는 치열하다. 계속된 인터뷰 거절, 시간은 흐르고 기자는 속이 탄다.
불행 중 다행, 골목에는 점심을 먹고자 더 많은 학생들이 모이고 있다. 인파가 많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조그마한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모자를 쓴 한 남성이 가게의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다. 웃음소리와 함께 따듯한 분위기가 느껴져 어디서 난 용긴지 무턱대고 가게에 들어가 말을 걸었다. “뭐 얼굴 실리고 이러지 않으면(웃음). 지금 밥 먹고 있으니까 밥 먹고 좀 있다 할까요?” 처음으로 컨텍에 성공한 후 들뜬 마음에 또 다른 취재원을 찾으러 밖으로 나왔다. 이리저리 눈을 돌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는데 책을 보면서 빠른 걸음으로 한 여자분이 지나간다. 인터뷰를 부탁하자 “좋아요. 저 지금 외로운 상황이거든요(웃음). (인터뷰)하고 싶어요”라며 “저기 끝에 이디야 있거든요. 거기서 인터뷰해요”라고 말했다.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가게에서 만난 취재원에게 연락이 왔다. 인터뷰를 수습 기자에게 맡긴 후 기자는 가게로 향했다.

작은 행복들로 살아간다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눈 서가영(전라북도 익산시 24) 씨는 임용고시 준비를 위해 올해 4월 노량진에 들어온 고시촌 새내기다. 서 씨의 하루는 쳇바퀴처럼 바쁘게 구른다. “제가 아침형 인간이라 하루를 아침 5시 정도에 시작해요. 아침 운동으로 줄넘기하고 씻고 학원에 가면 7시 정도가 되고, 중간에 자습하고 수업을 듣고 나면 어느새 6시가 돼요.” 바쁜 일정, 금전 문제, 외로움 등 불편한 점이 많지만 서 씨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량진에 오기 싫어서 인강(인터넷 강의)으로 버텨보려고 했어요. 한 번 들어오면 합격할 때까지 못 나오니까. 처음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나서는 ‘내가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 다른 직업을 가지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러 다니기도 했어요.”
서 씨는 마음가짐을 바꾸고 나서부터 고민을 떨쳐내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불안해도 그런 걱정을 하고 있으면 자기한테 도움이 전혀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오늘 사는 거, 으쌰으쌰 해서 매일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가사 좋은 노래를 듣거나 운동하는 거, 아침에 나뭇가지에 햇빛이 걸리는, 그런 사소한 걸 보고 들으면 행복해지고 힘이 나요.” 나중에 일어날지 모르는 큰 불행보다는 눈앞의 작은 행복을 찾는 게 원동력이 된다는 거였다. 서 씨는 마지막으로 같이 공부하는 노량진 수험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사랑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합격하든 아니든 지금의 내가 사랑받지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 고시생 송 씨를 만난, 고시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한 식당. 식권을 10장씩 묶어서 팔기도 한다. 최용훈 사진기자 choiyh@hgupress.com

“노량진에 오는 건 좋아요. 근데 오래 있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게에 돌아가 다시 취재원을 만났다. 올해 5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송 씨가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실명은 안 나갔으면 좋겠어요, 제가 공부를 좀 오래 해서”라며 멋쩍은 듯 웃음을 보였다. “나이가 들면 공부를 할 때 머리가 아파요.” 그는 직장을 다니다가 늦은 나이 시험에 도전하게 됐다. “대학 동창들끼리 모였는데 공무원 좋다고 공무원 친구가 꼬셔서(웃음). 근데 생각보다 어렵네요. 2012년도 왔으니까 여기 온 지 오래됐죠.”
송 씨가 노량진에 온 지 어언 5년째, 그는 고시 생활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노량진 전문가다. 학원, 고시원, 스터디 등 섭렵하지 않는 것이 없다. “노량진의 좋은 점은 두 가지예요. 실강(실제로 듣는 강의)을 들을 수 있는 거랑 스터디를 구하기 쉬운 거.” 하지만 그마저도 힘든 점이 있다. “강의실에 일찍 오지 않으면 강사를 보면서 강의를 들을 수 없어요. 뒤에 앉아서 스크린으로 보면 인강이랑 다를 게 없어요. 학원 다닐 땐 새벽에 와서 자리 맡고 다시 씻고 와서 수업 듣고 그렇게 했어요. 스터디가 파토가 나기도 했죠.” 6월에 시험을 앞둔 송 씨는 현재 학원에 다니지 않고 원룸에서 홀로 공부하고 있다. “이론은 학원에서 많이 들어서 지금은 문제풀이만 하고 있어요”라며 “고시원은 너무 갑갑해서 지금은 원룸에서 지내요. 1.5평 이런 데는 누우면 꼭 관 같아요”라고 말했다.
5년간 우여곡절도 많았다. “여자친구와는 여기서 스터디하다가 만났어요. 여자친구는 시험에 붙어서 벌써 8급이에요.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요.” 그가 왼손에 반지를 살짝 매만진다. “같이 공부하던 친구도 저번에 기술직에 붙어서. 혼자 남아서 우울해요(웃음).” 그에게 시험에 떨어졌을 당시를 조심스레 물었다. “짜증 나죠(웃음). 집에 돌아가서 1~2주 정도 쉬다가 다시 돌아와서 공부해요. 너무 오래 있으면 다 까먹거든요.”
오랜 고시 생활, 힘든 점을 묻자 그는 “여기 있으면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요. 살도 많이 찌고. 친한 학원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여기 오래 있으면 폐인이 된다고. 맞는 거 같애요”라며 “돈 문제도 그래요. 노량진도 웬만한 경제력이 돼야 와요. 학원비, 고시원비, 식비 한 달에 백 이상은 깨지니까. 알바하면서 그렇게 공부하는 얘들은 거의 없어요”라고 말했다. 힘든 고시 생활 가운데 그는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터득했다. “맛있는 걸 먹든가. 노래 부를 때고 있고. 보통 그런 생각 많이 해요. 시험이 됐을 때(합격했을 때) 내가 어떻게 돼 있을지 그런 상상하고.” 노량진에서 시험을 준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그는 “짧게 해서 떠나기를, 노량진에 오는 건 좋아요. 근데 오래 있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올해까지만 하려구요”라고 말했다.

“합격하면 연락드릴게요.”, “조심히 포항으로 돌아가세요.” 서 씨와 송 씨는 기자에게 따뜻한 인사말을 건넨 후 다시 바쁜 고시촌 생활로 돌아갔다. 이른 아침 몸을 일으켜 공부로 하루를 시작해 늦은 밤 잠자리에 들기까지 노량진 사람들의 하루는 공부로 가득 차 있다. 공부로 채워진 하루 속,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과 걱정 가운데 희망을 보며 노량진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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