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희
(생명과학, 15)

인공지능 전성시대다. 지니, 시리, 빅스비, 현란한 이름이 미디어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들은 혁명 일부에 불과하다. 의료, 산업, 각종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극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비로소, 4차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은 그냥 기술의 발달이다. 경제 및 사회적 변화를 동반하지만, 그 근본은 혁신적인 기술 발달에 있다. 1차 산업혁명 당시 증기기관 등의 등장은 단순 작업을 말 그대로 ‘기계화’함으로써 산업화를 일으켰다. 이제 기계는 단순노동과 연산 작업을 넘어 인간의 사고(思考)에 도전한다. 인공지능(AI)은 축적된 빅 데이터(Big Data)를 학습 도구로 삼아 합리적인 의사 판단을 돕는다. 기계는 단순노동에서 첨단산업에 이르기까지, 점점 많은 현장에서 인간의 판단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기계는 이제 기계적이지 않다.
희생 없이 이뤄지는 혁명은 없다. 1차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열악한 노동환경, 빈부격차 심화 등 난해한 문제를 던졌다. 4차 산업혁명은 이전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인간다움’을 흔들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완전히 대체한다면, 인간은 이제 뭘 해야 할까. 노동의 의미가 뒤흔들리고, 기계는 인간을 매끄럽게 모방한다. 인간다움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 문제에 답해야 한다.
문제에 답할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돈이 되는 학문이 뜨는 동안 돈을 만들지 못하는 학문은 사양길을 걷고 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한다’는 말은 ‘돈 안 되는 학문을 정리한다’는 의미로 통한다. 대다수의 인문학은 생존을 위협받고, 공학자들의 교양강의 정도로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필요하다. 대학은 학문하는 장소다. 실생활에 인접한 문제를 가지고 씨름할 수도 있고, 조금은 철학적인 문제를 사색해볼 수도 있다. 그것이 핵심이다. 다양성, 서로를 향한 존중, 서로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각자 지식을 그러모아 시대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자연과학을 배우든, 공학을 배우든, 인문학을 배우든 각자의 위치에서 답해야 한다. 그것이 대학과 대학 구성원의 의무다.
한동대는 학문하는 장소다. 이에 한동대 역시 4차 산업혁명이 던지는 무수한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감히 물어보고 싶다. 한동대는 학문할 수 있는 곳인가, 아니면 기술만 좇는 곳인가. 지금의 한동대는 시대의 질문에 응답할 수 있을까.
어른에게는 으레 그들만의 사정이 있는 법이다. 대학은 대학의 사정이 있다. 산업 수요에 맞춰 인재를 배출하지 않으면 여러 방면에서 학생에게 불이익이 간다. 국가도 그만한 사정이 있다. 세금을 거뒀으니 국민 손에 한 푼이라도 더 돌아갈 수 있는 부분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런 이유로 미룰 만한 문제가 아니다. 이미 인문학은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기술 발전에 집중하는 것은 어린아이 손에 총을 쥐여주는 격이다. 그리고 그 상황의 책임은 대학의, 한동대의 것이다.
나에게 ‘세상을 바꾸자’는 ‘올바르게 학문하자’는 뜻이다. 과학과 인문학은 서로를 배워야 한다. 그러나 어느 하나가 우월한 학문일 수는 없다. 한동대가 기술과 사람을 조화롭게 공부할 수 있는 지식의 장(場)이 되었으면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답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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