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살인적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날씨였다. 하루가 멀다고 역대 최고 기온을 경신하면서 전국을 대상으로 내려진 폭염특보는 30일을 넘었다. 폭염은 취약계층에게 더욱 버겁다. 여기서 말하는 취약계층이란 ‘한경 경제용어사전’에 의하면 연령대에 상관없이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재화를 구매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는 저소득층뿐 아니라 신용불량자와 같은 취업이 힘든 여건에 있는 사람들도 포괄하는 용어다. 취약계층인 사람들은 날씨가 아무리 험하더라도 이에 대해 개인적으로 대처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과연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

 

우리가 스쳐 간 쪽방촌 그 골목

본지 기자는 무더위 속 취약계층의 삶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자 지난 15일 포항시 북구 중앙상가 일대의 쪽방촌에 찾아갔다. 해당 쪽방촌은 자주 오던 육거리 롯데시네마 바로 옆에 위치해 있지만 무심코 스쳐 갔던 곳이었다. 골목은 두 사람도 지나가기 힘들만큼 좁았다. 골목을 따라 있는 집들의 지붕은 양철, 플라스틱판 조각 등으로만 이뤄져 태양의 열기를 막아주지 못할 듯 보인다. 취재를 나간 당일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폭염 경보가 발령된 상황이었지만 쪽방촌 일대 거리를 서성이는 노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재활용품을 수거하거나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배식 몇 시간 전부터 기다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4년 전까지 이 쪽방촌에 거주하던 손모(경북 포항시 88)씨의 사정도 다르지는 않다. 당시 전 재산 200만 원을 써서 영구임대아파트로 이사한 손씨는 이사 후에도 이전에 살던 집 주변을 가끔 찾아와 폐지를 수거하며 하루를 보낸다. “마음 편히 쉴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 이걸 안 하면 밥을 못 먹으니까…” 손씨는 그래도 이사한 이후에는 선풍기를 방에 둘 수 있어 훨씬 낫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내 손씨는 더위로 인한 어지럼증이 찾아와 근처 정자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병원 방문을 권유했지만 손씨는 이내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폭염으로 건강에 무리가 가도 손씨는 생계유지를 위해 폐지 수거를 쉴 수 없는 상황이다.
바로 옆 골목에서 무료 급식소 만나의 집의 배식을 받으려 3시간 전에 나온 전모(경북 포항시 92)씨를 만날 수 있었다. 일찍부터 기다리는 연유를 묻자 전씨는 “일찍부터 안 기다리면 못 먹어. 조금 있으면 그늘에서 기다리지도 못해. 이 앞에서 기다리다가 쓰러진 사람도 있어”라고 말했다. 2시간 뒤 만나의 집 앞을 다시 찾아갔다. 만나의 집 앞의 그늘은 이미 발 디딜 곳 하나 없이 사람들로 꽉 차 있지만 만나의 집 정문은 약속된 12시가 다 되가는데도 식사 준비가 끝나지 않아 굳게 닫힌 상태다. 만나의 집의 식사 준비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35도의 날씨다.

▲ 무료급식소가 열리기까지 기다릴 곳이 없어 그늘에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폭염에 취약한 취약계층

취약계층은 폭염으로 인해 건강의 위협을 받기 쉽다. 노인의 경우 더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이는 체온조절중추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노인은 노화로 인해 체온조절중추가 온전히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만성질환을 앓고 있으면 체온조절중추의 문제가 더 심해진다. 인간의 몸은 더위를 인식하면 혈류량을 늘리고 땀을 흘려 체온을 조절한다. 하지만 체온조절중추가 망가진 사람은 폭염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적절한 조처를 하지 못한다. 포항북부소방서의 한 관계자는 “당뇨나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앓는 노인들은 폭염 자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고독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젊은 취약계층도 폭염 속 업무 환경으로 인해 건강 악화를 겪을 수 있다. 일용직 노동자와 같이 야외 작업장이 주 노동 환경인 취약계층이 해당된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 1일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전체 온열질환자 중 약 28%가 야외 작업장에서 발생한 환자들이었다. 건설노조가 7월 20~22일 토목건축 현장 노동자 230명에게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폭염 특보 발령 때 규칙적으로 쉬고 있다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이 8.5%에 불과했다. 경기 건설노조 김태범 중서부건설지부장은 “건설노동자에 대한 휴식 권고에 따른 임금 보전 대책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해당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 폐지줍기로 생계를 유지하는 포항시민, 더위 속에도 마땅히 쉴 곳이 없다고 말했다.

어딘가 미흡한 포항시의 폭염 대책

포항시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여러 대책을 내놓았지만 빈 틈이 많았다. 지난 6월 7일, 포항시가 폭염대비 태스크 포스(Task Force, 이하 TF)를 구성해 마련한 대책에는 ▲도우미를 활용한 안전 확인 ▲무더위 쉼터 운영 및 안내 등이 있다. 폭염 도우미로 지정된 방문 건강관리사와 사회복지사는 인력 부족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포항시 북구 보건소 폭염대비 TF에 소속된 방문 건강관리사는 6명이다. 해당 인원이 일주일 내에 곧장 방문해야 하는 취약계층은 500명 이상이다. 500명은 질병 등으로 인해 취약계층 중에서 특별관리대상으로 지정된 인원만 나타낸 것이다. 실제 포항시 북구의 취약계층 인구는 약 6,800명으로, 방문 건강관리사 6명이 이 인원을 모두 관리해야 한다. 또한, 포항시청의 사회복지사 한 명이 담당하는 취약계층의 수는 약 250명이다. 포항시청 주민복지과의 한 관계자는 “정말 급한 일이 아니라면 매일같이 취약계층을 돌보는 것이 불가능하다”라고 호소했다. 도우미제도를 시작한 2000년대 후반 이후로 꾸준히 제기돼 온 인력부족 문제지만 올여름까지도 해결이 되지 않은 고질적 문제였다.
취약 계층이 더위를 피해 쉴 수 있도록 지정한 시설인 무더위쉼터는 모든 취약계층이 아무런 제약 없이 이용하기에는 어려운 현실이다. 포항시가 지정한 무더위쉼터는 598개지만 모두 만 60세 이상인 사람만 이용 가능한 노인시설이다. 취약계층이라도 만 60세 미만인 사람은 이용이 어렵다. 또한 노인시설 대다수가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어 비회원은 이용할 수 없으며 회원가입 절차는 체계화되지 않아 제대로 안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시에서 시설 측에 회원이 아니더라도 취약계층이라면 무더위쉼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노인시설이 이를 지킬 의무는 없다.

빈 틈 있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

포항시와 같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진 대책들도 그다지 큰 효과는 드러나지 않았다. 정부가 올해 시행한 대책은 취약계층의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것들이다. 모두 단발성으로 끝나는 에너지 공급에 관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시행한 대책은 ▲누진세 완화 ▲에너지 바우처 하계 적용 추진 등이 있다.
누진세 완화와 냉방비 지원의 정책은 에어컨을 주 냉방기기로 활용한다는 전제하에 시행된 정책이지만 취약계층의 주 냉방기기는 선풍기이기 때문에 혜택을 받기 어렵다. 특히 누진세 제도는 취약계층의 전기세 부담을 낮추겠다는 취지가 담겨있지만 정작 여름에 취약계층이 받는 혜택은 크지 않다. 해당 정책은 가정의 한 달 총소비전력이 400kWh 이상인 곳부터 큰 혜택이 적용된다. 그 이하의 소비전력을 사용하는 가구는 혜택이 미미하다. 평균적으로 8평형 에어컨 한 대의 소비전력은 약 900W로 선풍기 한 대의 평균 소비전력인 45W보다 20배 정도 많다. 400kWh 이상의 총소비전력은 에어컨 등의 높은 소비전력을 지닌 가전제품을 사용해야 나올 수 있는 수치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취약계층의 연평균 총 소비전력은 약 200kWh 내외로 혜택을 볼 수 있는 소비전력에 비해 확연히 낮다.

*에너지 바우처 제도의 하계 지원 추진 또한 허점이 존재한다. 정부에서 배포하는 에너지 바우처 설명서에는 환급 제도에 대한 설명이 없다. 에너지 바우처 제도는 한국전력(이하 한전)에서 발급하는 전기·가스비 고지서를 제출해야 요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취약계층이 주로 거주하는 시설은 방세에 전기·가스비가 포함된 경우가 많아 가정별 개별 고지서를 받지 못한다. 이처럼 요금에 대한 개별 고지서가 없을 경우, 한전이나 한국도시공사에 예외신청을 하면 사용 금액을 환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안내 부족으로 실제 환급률은 매우 낮다. 기획재정부 정보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에너지바우처 전체 예산(2016년 기준 487억) 중 단 1.8%, 9억 원만 '환급 방식'으로 집행됐다. 전체 예산의 17%, 79억 원은 집행되지 않았다.

재개해야 할 <폭염 피해 백서> 제작

질병관리본부는 폭염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2012년 폭염에 대한 사회문화적 역학조사인 <폭염 피해 백서>를 제작했지만 2015년 중단했다. 이는 폭염으로 인한 죽음의 사회적 원인을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다. 백서에는 온열질환 사망자들의 월 평균소득과 학력, 가족관계, 동거인 유무, 냉방기기 보유 수, 주거지 사진까지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뉴욕대학교 사회학과 에릭 클라이넨버그(Eric Klinenberg) 교수는 1995년, 1999년 발생한 시카고 폭염을 분석하며 이러한 역학조사의 필요성을 일찍이 강조한 바 있다. 클라이넨버그 교수는 시카고 폭염 분석과정을 발표하며 “폭염으로 피해를 당함에도 집계되지 않는 수많은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요소가 위협적인 요소가 되었는지 조사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2015년 조사 중단 당시, 이전까지 조사를 통해 취약계층의 열악한 주거환경 등과 같은 문제점이 발견됐지만 구체적인 대비책은 현재까지 마련되지 않았다. 매년 다양한 지자체에서 2015년까지의 조사를 바탕으로 취약계층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요소에 대한 개선방안을 제시함에도 그에 대한 대책은 미비한 상태다.

앞으로 매년 폭염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장호 연구원은 2017년 학술지 ‘아시아태평양기상과학지’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2064년까지 여름철 평균 기온이 계속 올라간다고 경고했다. 이 연구원은 2029~2064년 사이에 폭염 일수는 1979~2014년의 2.2배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이러한 예측 속 특히 취약계층에 대한 세심한 관심이 현재보다 요구되는 바다. 이제는 매년 반복되던 비슷한 대책에서 벗어나 취약계층의 인구 특성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할 시기다.

 

*에너지 바우처 제도: 기존에는 겨울에만 시행된 제도로 지원 대상자들에게 일종의 쿠폰을 주고 유류, 가스, 전기 등을 사용한 대금을 정부가 사후에 정산해준다. 지원 대상자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른 생계급여 또는 의료수급자이며 수급자 본인이나 세대원이 해당이 돼야 지원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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