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에 위치한 작은 마을, 소성리. 박배일 감독의 다큐멘터리 <소성리>는 *사드(THAAD)가 배치된 소성리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화를 위해 들여왔다는 무기는 결국 소성리 사람들에게 평화를 깨는 무기가 됐고, 현재 그곳에는 여전히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소성리>는 ‘사드’도 ‘국가’도 아닌 ‘사람’에 초점을 맞춰, 소성리 마을에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맞서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별처럼 평화가 내리는 마을

별이 지고 해가 뜨면 어제와 다름없는 하루가 시작된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등져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는 할머니들. 영화는 그들의 손과 발에 묻은 흙과 굽은 허리, 주름진 얼굴 속에서도 잃지 않은 웃음을 담고 있다. 자막도, 내레이션도 없이 영화는 초반 40분의 시간 동안 소성리에 사는 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비춘다.
여러 주민 중 눈에 띄는 세 명의 인물이 있다. 82세 마을 대장 ‘금연’, 65세 페미니스트 ‘순분’, 87세 까칠 농부 ‘의선’이 그 주인공들이다. 소성리라는 삶의 터전에서 뿌리내리기까지 각자 저마다의 사연과 세월이 담긴 삶이 이어져 왔다. 마을 모퉁이 곳곳을 돌아다니며 왁자지껄 떠들썩한 금연과, ‘8부녀 회원들’과 재미난 일을 꾸리는 순분, 바지런한 몸으로 새벽부터 밭으로 향하는 의선. 이름만큼이나 개성 강한 이들에게 그간 소성리에서의 생활이 마냥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순분은 자신의 이름뿐만 아니라 8부녀 회원들의 이름을 되찾아주며 마을을 혁신하기 위해 노력한다. “암만 바빠도 옳게 해야 되지” 의선의 말 한마디가 보는 이의 마음에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아픈 몸 지탱하기도 힘든 나이지만 고단함 속에서도 희망과 기쁨을 잃지 않음을, 영화 속 그들이 말해주고 있다.

 

“6·25 때 비행기 댕기는 것캉 똑같다 요새 난리 나서”

소성리는 6·25 전쟁 당시 고난의 역사를 겪은 지역이다. 마을회관에서는 인민군이 빵을 팔았고 마을 입구에는 한국군이 주민들을 학살했던 상흔이 남아있다. 끔찍했던 그 시대의 흔적은 주민들의 가슴 속에도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전쟁을 겪으며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봤던 할머니들에게 사드란, 아픈 기억을 야기하는 더없이 불안하고 두려운 존재다. 겪어보지 못한 자는 결코 알지 못할, 아픔의 역사가 또다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저쪽에서 대포가 날라올 때 멀리 못 오게 하기 위해서 여기서 받는 것’ 이토록 쉽고도 단순하게 사드의 뜻을 이해하고 있는 할머니들은 이것이 평화를 나타내는 단어가 아님을 직감한다. 소소하고도 평화로운 그들의 일상에 ‘투쟁’이라는 단어가 끼어든 것이다. 미군 차량들이 성주로 들어오고, 사드 찬반 단체들이 몰려와 거침없이 서로를 향해 비수를 꽂는 말을 뱉어낸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이들은 종북 빨갱이며, 다 죽어야 한다’는 서북청년단의 막말은 소성리 주민들뿐 아니라 영화를 보는 이들의 마음에까지도 날카롭게 스며든다. 중국의 거센 반발로 국제적인 갈등이 일시적으로 봉합된 지금, 영화는 중국과의 갈등이 봉합된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소성리 주민들과의 갈등을 봉합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빠른 정세의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상처 입은 주민들은 남아있다. 영화는 우리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치유하는데 더 큰 공감대의 토대를 마련해준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기만 그러면 하지만도 다 그러면 우리 한국은 다 절단 나는 거 아니가 그래 싶어서. 우리는 죽어도 괜찮지만도 크는 애들 그것들이 이 세상 볼라고 나가지고 그래 더 하지 뭐”

 

<소성리> 박배일 감독과의 만남

자칫 우리가 듣지 못할 수 있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사람, 바로 박배일 감독이다. 그는<소성리>를 비롯해 <밀양 아리랑>에서도 밀양 송전탑 싸움에 나선 할머니들의 곁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박배일 감독은 장애인, 노동자, 여성 등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에 대한 관심을 점차 넓혀 가며 꾸준히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Q 작품을 만드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박배일 감독(이하 박): 2017년에 대선이 끝나고 나서 성주에 계시는, 한국에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온몸을 쓰고 계신 분들에게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20%밖에 안 된다는 이유로 그분들에게 ‘사드 안고 죽어버려라’ 이런 심한 댓글을 다는 것을 보고 너무 화가 나서. 제 상식에서 생각했을 때는 그런 환경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들을 지지하고 응원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상황을 보고 그러면 내가 이 사람들이 왜 그렇게 보수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보수성을 안고도 사드라는 걸 막기 위해서 노력하는 힘은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역사적으로 맥락화 시켜보면 이런 나쁜 말을 하는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 때문에 들어갔어요.
그런 맥락들을 설명해주면서 한국 사회는 여전히 전쟁 중이고 그 전쟁의 또 하나의 가능성을 만드는 사드가 소성리라는 공간에 들어왔을 때, 전쟁을 경험한 이분들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 그리고 이게 단순히 소성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모두의 문제고 나의 문제인 거다 라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서 지역주민의 삶을 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 모양새를 갖춘 것 같아요.


 

Q 영화에 등장하는 ‘금연, 순분, 의선’이 주는 영화 속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박: 순분 회장님의 경우에는 오랫동안 자신의 이름 없이 살아오셨던 분이세요. 예전 한국 여성들의 대부분이 결혼하고 나면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리잖아요. 그런 삶을 한동안 살아오셨던 분이 이제 자기 이름을 찾아 나가고 자기가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됐어요. 그런 삶을 사시다가 사드를 맞게 되면서 큰일을 당하고 계신 건데 결국에 큰 의미에서는 이분도 페미니스트예요. 자기 이름을 찾고 또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찾아주는 활동을 했기 때문에. 그분의 삶을 이해하면서 지금 우리 안에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의선 할머니는 굉장히 노부의 몸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하시는 힘들을 느끼셨으면 좋겠고. 금연 할머니 같은 경우는 마을 대장이에요. 팔십이 훌쩍 넘으신 나이인데도 지팡이 하나 안 짚고 경찰과 맞서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시는 분인데, 왜소한 몸인데도 자기의 위치가 있으면 그렇게 살아나갈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 힘들을 얻어가면서 그분들의 삶을 같이 들여다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Q 이 세 분이 막강한 힘에 맞서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박: 제가 밀양 송전탑 작업을 3년 하면서 영화 두 편을 만들었는데 그때 할머니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라는 이야기를 물어본 적이 많았어요. 이런 이유 혹은 저런 이유일 수 있겠다. 근데 정말 이런 이유로 그분들의 힘을 한정 지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제가 가진 언어의 한계일 수도 있고, 언어가 그분들의 힘과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게 있어서 함부로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영화를 봐주세요. 그러면 각자 가지고 가는 힘이 있을 거예요. 그것이 각자가 이해하는, 그분들이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Q 작품이 실제 삶을 담았다는 점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과 지역주민들에게 줄 수 있는 영향은 무엇일까요?

박: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가장 기대하는 영향은 소성리에서 살아가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가 결국 나의 이야기라는 것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도시에 살면서 느낀 건데 (도시 사람들도) 사드와 비슷한 속성으로 계속 불안을 느끼며 헐떡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이 이야기가 소성리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이해했으면 좋겠고 좁게는 사드가 배치돼 있어도 북에서 오는 핵폭탄을 방어 못 하는 게 증명됐기 때문에 만약 핵폭탄이 날라와 소성리에 떨어진다고 하면 사실 대한민국에 떨어지는 것과 똑같은 것이거든요. 전쟁을 하는 순간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전쟁보다 더 심한 상태로 가기 때문에 집단 이기주의 때문에 이런 것들을 막고 있다고 이해하지 말고 나의 문제를 그들이 대신해서 막아주고 있다는 고마움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사드(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진제공 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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