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아이가 있다. 살아남은 아이와 아들을 잃은 부모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영화 ‘살아남은 아이’는 아들이 살린 아이와 만나 점점 가까워지며 상실감을 견디던 부부가 어느 날 아들의 죽음에 관한 비밀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시작으로 다양한 시선과 감정들을 담아내고, 아들의 죽음에 얽힌 진실의 끝에서 용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죄책감으로 뒤덮인 삶을 어떻게 위로하고, 애도를 표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진정한 애도와 위로라는 건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말뿐인 위로가 아닌 진심을 공유할 때, 서로가 힘이 돼 상실의 아픔이 주는 무게를 덜어낼 수 있다. 그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영화는 더없이 현실적으로 담아낸다.

죄책감과 상실감 앞에 남겨진 이들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는 성철과 미숙은 6개월 전 아들 은찬을 잃었다. 친구들과 물놀이를 갔던 은찬은 물에 빠진 친구 기현을 구하고 숨을 거둔다. 아들의 죽음에 고통스러워하는 미숙과, 담담해 보이는 듯한 성철. 그런 그가 미숙은 원망스럽다. 누구보다 가슴 아픈 두 사람이지만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영화는 인물들이 고통을 대하는 방식을 상반되게 표현해 상실의 아픔을 더욱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미숙은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힘들어한다. 어느 공간과 시간에 상관없이, 시시때때로 벅차오르는 그리움과 상실감은 그녀를 너무도 지치게 한다. 그녀에게 아들의 죽음은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아들이 구한 아이 기현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아들의 죽음은 미숙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하지만 미숙은 자신을 보고 몸을 숨기는 기현을 바라보며 원망이 아닌 연민을 느끼기 시작한다.

성철은 하나뿐인 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사력을 다한다. 아내 미숙에 비해 다소 담담한 듯한 모습의 뒤에는 끊임없이 절제하고 감내하는 그의 노력이 숨겨져 있다. 성철은 아들 은찬의 의사자 지정에 힘쓰고 그로부터 받은 보상금 전액을 학교에 기부한다. 현실적인 그는 절제하며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다. 성철은 아들이 구한 ‘살아남은 아이’ 기현을 찾아간다. 아들의 희생을 숭고히 하기 위해서는 기현이 어떻게든 잘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부모 없이 혼자 사는 아이에 대한 연민에서인지 성철은 기현에게 도배일을 같이 하자고 제안을 한다. 아르바이트로는 감당하기 힘든 생활비가 아쉬웠던 기현은 성철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고 세 사람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게 된다.

성철, 미숙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진 치유로 인해 기현은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마주한다. 기현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가족의 온기를 느끼며 적극적으로 변화한다. 성철을 따라 시작하게 된 도배일에 흥미를 느끼고, 도배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그는 어느 때보다도 활기찬 일상을 보낸다. 부부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했던 기현은 두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서 이들을 이해하게 된다.

“아줌마는 은찬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잖아요”

세 사람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각각 애도의 방식이 다르기에 사람들은 그들을, 혹은 서로를 위로함에 있어 더욱 쉽지 않다. 사람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들이 다르고 그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감정의 교제를 통한 이해가 바탕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사람이 정말로 원하는 방식의 위로를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속 세 사람은 어려운 이해관계에 놓여있음에도, 서로 교제하며 이해함을 통해 서로에게 속 깊은 위로가 돼 준다. 성철과 미숙은 기현과 함께 하며 잊고 있었던 삶의 의지를 회복해가고, 고통에 무감했던 기현 또한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상실의 끝에서 던지는 용서에 대한 질문

소중한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고, 차갑고도 무겁게 얼어버린 그들의 마음을 우리는 어떻게 어루만질 수 있을까. 성철과 미숙이 아들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은 우리가 접했던 사회적 죽음의 사례들을 떠오르게 한다. 죽음에 대한 진실은 유가족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줄지 모르며, 그들이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또한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이제는 지겹다는 듯한 주변의 차가운 시선과 자신들이 제외된 채 진행되는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죽음에 대한 진실을 대면한다는 것은 더욱 담대하고 강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살아남은 아이>는 애도와 용서에 관한 영화다. 아들의 죽음을 아름답게 애도하려 했던 부부의 이야기는 아들의 죽음에 얽힌 진실이 밝혀지면서 용서에 관한 이야기로 전환된다. 용서를 구하는 대상인 기현과 용서의 주체가 되는 성철, 미숙은 모두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고통받는 인물들인 것이다. 밝혀지는 죽음에 대한 진실의 끝에 영화는 우리에게 진정한 용서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기현에게서 비춰지는 사회적 메시지를 통해 깊은 울림을 남긴다. 관객에게 여운을 주는 것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기현의 모습이다. 수없이 갈등하고 상처 입지만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절망 속 피어나는 희망임을 말해주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나’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우리’를 바라볼 것을 다짐하게 한다. 이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기현이라는 인물의 변화는 ‘죽음’이라는 주제에 무감했던 관객들이 자신의 감정을 되돌아보게 한다. 지나쳐왔던 현실의 문제, 즉 죽음에 대해 직시하면서 관객은 비로소 성철과 미숙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살아남은 아이> 신동석 감독과의 만남

‘살아남은 아이’는 신동석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신 감독은 강렬한 스토리에 묵직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섬세하고 힘 있는 연출로 많은 평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Q ‘죽음’이라는 주제로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신동석 감독(이하 신): 저도 주변에서 떠나간 사람들이 있고 그랬을 때 저 역시도 감정의 기복이나 애도의 기간을 거쳤던 것 같아요. 그때 다른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 위안을 얻었었고 저한테 항상 관심 있는 주제였어요. 그래서 언젠가는 애도에 대한 영화를 할 거다 라는 생각을 쭉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살아남은 아이’ 전에도 가족 중에 누군가 죽어서 파별로 영화가 시작되는 시나리오를 두 개를 썼었어요. 사실은 이런 이야기를 쓰면 쓰는 사람도 고통스럽고 힘들기 때문에 피하고 싶은 면도 있는데, ‘살아남은 아이’는 쓰고 나서 저한테 위로가 됐던 것 같아요. 뭔가 후련한 느낌이 있었어요 쓴 후에는. 그래서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Q 작품 안에 가장 담고 싶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신: 아들을 잃은 고통을 공유하는 부부 사이일지라도 영화를 보면 서로의 애도의 방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갈등이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더 주변 사람들을 위로하는 게 쉽지가 않죠. 그 사람이 정말 원하는 방식의 위로를 찾아야 되고 그만큼 또 노력을 해야 되는 것 같아요.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하고. 굉장히 위로가 어렵긴 하지만 가능하긴 하다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생각에 인간이 더 폭력적으로 되지 않고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그 배경에는 죽은 사람에 대한 생각, 감정 이런 것들이 기반이 되는 것 같아요. ‘애도’라는 것이 인간에게 없었다면 윤리적인 선택이 어렵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주제적으로.

 

Q 영화에 도배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데, 특별히 도배라는 일을 작품에 넣기로 선택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신: 처음에는 도배라는 일을 중심으로 두고 글을 쓰지는 않았고요, 부부가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설정이 필요해서 인테리어 가게를 찾아갔는데, 사장님이 공사하는 곳을 따라다니다 보니까 도배가 많이 눈에 들어왔어요. 이유는 성철의 입장에서 보면 낡은 콘크리트 벽에 새하얀 도배지를 바른다는 게 뭔가 아들을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는 그런 모습 같기도 했고 기현 입장에서는 도배를 하는 게 자신의 죄책감을 덮는, 속죄하는 그런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해서 일하는 모습을 제가 잘 표현하면 관객분들이 인물에 맞게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싶어서 도배를 중심으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영화 초반과 후반에 기현이 고함을 지르는 씬이 한 번씩 등장하는데 각 고함에 담긴 기현의 감정이 다르다고 느껴졌어요.  

: 비명이라고도, 고함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두 번의 고함이) 전혀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기현이란 인물을 가장 명확하고 짧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그 고함인 것 같았어요. 영화 초반에 기현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 무감한 인물이에요. 다른 사람의 고통이 문제가 아니라 가장 절실하고 절박한 건 지금 자신에게 직면한 현실적 문제, 당면한 생활고 이런 거죠. 그래서 처음의 고함은 자신의 처지가 어렵기 때문에 나오는 비명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렇지만 기현이 변화하고 그 가운데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잘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되면서 다시 고함을 지를 때는 다른 의미로 느껴질 수 있는 고함이겠죠.   

 

Q 아들을 잃은 부모와 죽은 아들이 살려낸 아이라는 관계의 딜레마 안에서도 세 사람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 기현이라는 인물이 부부에게 아들을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는 접점이 된 것 같아요. 이 세 사람이 그 자리에서 떨어져 있었다고 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을 줄 수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미숙 같은 경우에는 기현이라는 인물을 보면 당연히 아들이 생각나서 고통을 간직할 수밖에 없게 되죠. 근데 한편으로 그게 미숙에게는 기현에게 다가설 수 있는 그런 면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성철은 입장이 다른데, 성철은 아들의 죽음을 숭고하게 만들려 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처음에 기현을 받아들이는 게 인간적인 정보다는 아들의 무덤 옆에 멋진 비석을 세워주는 것처럼, 아들의 죽음이 더욱 숭고하게 빛나려면 기현이 잘 살아야 한다 그런 식으로 다가갔을 수도 있어요. 근데 세 사람의 관계가 발전하면서 처음에 다가갔던 이유를 넘어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었고 변화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작품에 대해서, 혹은 관객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신: 저희 주연배우분들, 최무성, 김여진, 성유빈 배우가 굉장히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셨어요. 그래서 너무 적게 극장에서 보시면 조금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연기가. 다소 어둡고 불편한 내용일 수도 있지만 의외로 따뜻한 위로를 받은 느낌이라고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런 부분에서 용기를 내주시고 영화를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세 사람의 노력이 완벽한 용서와 화해를 의미하는 건 아니더라도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마지막 끝 장면도 그렇게 처리를 한 거였고. 현실이 더 냉혹하다고 느낄 때, 불가능하다고 보일 때 그 안에서 건져낸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니까 (영화를 통해서) 위로 받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송수빈 기자 songsb@hgupress.com

사진제공 ㈜엣나인필름

 

저작권자 © 한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