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한국전쟁 도중 북한이 한국전쟁 고아 1,500명을 폴란드로 비밀리에 송환했던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간 두 여성의 여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아이들과 대화도 통하지 않고, 생김새도 전혀 다르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상처를 겪은 폴란드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아픈 상처를 누구보다 공감하며 사랑으로 보듬었다. 상처의 연대로 치유를 이끌어낸 이들의 이야기는 사상과 이념, 언어와 인종을 뛰어넘는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남과 북이 그리는 치유의 여정

 

추상미 감독과 탈북 배우 이송은 작품 안에 등장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전쟁 고아들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남과 북의 두 여성이 폴란드 보육원을 찾아가 증언을 수집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해 나가는 과정은 작품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작품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추 감독이 자신의 극영화 속 단역 배우들을 모집하기 위해 탈북 학생을 대상으로 열었던 오디션 현장의 기록도 담고 있다. 비중 있는 배역을 맡게 된 이송은 감독으로부터 폴란드 여정을 함께 떠나자는 제안을 받게 되고, 두 사람은 역사 속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지만 가슴에 남아있는 그 시절의 발자취를 따라 여정을 떠나게 된다. 서로를 잘 알지 못했던 두 여성은 함께 여행하며 차츰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향한 그리움이 담긴 선생님들의 눈물에 송이는 닫혀 있던 마음의 빗장을 열기 시작하고, 탈북 과정 중 상처들을 털어놓는다. 6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 시절 폴란드 선생님들과 아이들의 경험했던 상처의 연대가, 두 여성에게 치유로 작용하는 과정은 관객에게 희망을 제시한다.

 

역사에 가려진 아이들

 

1951년 한국전쟁이 끝나고, 참혹했던 전쟁은 수많은 전쟁고아를 남겼다. 전선(戰線)이 남과 북을 오르내리는 동안 북한군은 고아들을 후방으로 보냈고, 김일성은 1951년 동유럽 국가들에 “전쟁 중이니 좀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전쟁고아 중 1,500명은 폴란드 프와코비체 양육원으로 보내졌고, 폴란드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폈다. 8년의 세월이 흐르고, 북한에서 갑작스러운 송환 명령이 떨어진다. 당시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를 이룩하기 위한 *천리마운동이 진행 중이었고, 이로 인해 다시금 노동력이 필요해졌기 때문이었다. 다시 만나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며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원치 않는 이별을 맞이했다.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것은 북한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당시 폴란드로 보내진 전쟁 고아 중에 남한 아이들이 속해 있었다. 아이들 폐에서 발견된 다양한 기생충 가운데 절반은 남한 지역에 많이 서식하는 종류였다.

 

 

불안에 떠는 눈동자, 사랑으로 치유되다

 

까만 머리에 까만 눈.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잘 되지 않는 비슷한 생김새에 아이들이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폴란드에 도착했다. 프와코비체 양육원의 유제프 원장은 생전 처음 보는 동양 아이들이었지만, 이 아이들이 그저 타국의 아이들이 아닌 자신의 유년 시절 일부와 같이 느껴졌다.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했고, 300명의 교사에게 ‘마마’, ‘파파’라고 부르도록 한다. 세월이 지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 가장 잘했다고 생각되는 것은 아이들을 돌보았던 시절의 기억이었다.

아이들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지금까지도 폴란드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6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시절 기억은 잊혀지지 않고 그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폴란드에서 한국전쟁 고아들을 보살핀 양육 교사 상당수는 제2차 세계대전 고아 출신이었다. 전쟁이라는 비극 아래, 아이들과 같은 상처를 겪었던 이들은 자신의 유년시절과도 같은 이 아이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보듬어준다. 피부색도, 언어도, 문화도 달랐지만 누구보다 가슴 깊이 아이들의 상처를 공감하고 이해했던 폴란드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상처를 연대하며 치유될 수 있었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 추상미 감독과의 만남

 

5년 만에 배우에서 감독으로 다시 돌아온 추 감독. 그녀의 영화 연출 데뷔작인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2018 부산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평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녀는 크리스천 투데이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하나님과의 공동 작품’으로 언급한 바 있다. 숨겨진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나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이번 작품을 '하나님과의 공동 작품'이라고 말씀하신 까닭은 무엇인가요?

 

추상미 감독(이하 추): 장편 소재를 찾게 해달라는 저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신 작품이었어요. 기도를 하고 있던 중에 발견하게 된 소재였고, 1년 반 동안의 시나리오 개발을 거쳐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기까지 4년여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데, 그 시간 동안 많은 연단과 훈련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작품 속에 담아내려고 노력했어요. 어떤 성경적인 기준이나 가치를 담아내는 것이 아닌, 예배자로서 찬양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인사이트들을 영화에 담아낸 거죠.

 

Q 폴란드를 이송 배우와 함께 가기로 하신 이유와, 함께 한 시간이 두 분께 어떤 의미가 됐는지 궁금합니다

 

추: 이 다큐멘터리는 극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한 리서치를 위해서 폴란드를 간다라는 게 전제가 된 작품이에요. 그래서 극영화에 필요한 조단역 그룹을 탈북 학생 대상으로 오디션을 봐서 뽑았어요. 거기서 제일 큰 조연으로 뽑힌 친구가 송이였고, 송이와 함께 폴란드 리서치 여정을 가면서 연기도 훈련해보고 그 역할을 알아가는 체험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작품을 다큐로 전환하게 되면서, 탈북민 자매를 데리고 갔을 때 폴란드 선생님들이 굉장히 반가워하시겠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송이가 자신의 상처를 이야기하지 않아서 답답하고 어려움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하나의 드라마가 됐죠. 폴란드 선생님들과의 만남을 통해 이 친구가 마음의 빗장을 풀게 되고 자신의 상처를 대면하면서 회복이 되는 여정까지를 그릴 수 있게 됐어요.

 

Q 폴란드의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인종과 언어를 넘어 연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추: 폴란드 선생님들이 제2차 세계대전을 혹독하게 치른 분들이에요. 한국의 역사와 비슷한 상처가 있는 폴란드에서 전쟁 중에 가족을 잃거나, 고아인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기 때문에 전쟁의 상처가 매개가 돼서 이 아이들을 자신의 유년 시절의 일부로 보신 거죠. 제가 ‘상처의 연대’라는 주제적인 말을 노트에 쓰는 장면이 영화에 나오는데, 상처가 연대가 돼서 상처가 상처를 품는다는 의미로 그 말을 사용했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련을 주실 때에도 이유가 있듯이, 선생님들이 타인의 고난을 이해하는 마음과 눈을 갖고 계셨던 거죠.

 

 

Q 남북한 청년들이 경험하는 삶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일단 제일 중요한 건 대화에요. 대화 속에서 차이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그 차이가 왜 생기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요. 그에 대한 지식이 있어도 (받아들이기) 싫을 수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있는 상처들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가 된다는 것을 폴란드 여정 동안 알게 됐어요. 저도 송이와 폴란드 여정 동안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데 한 방에서 같이 자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송이는 북한에서 온 친구이기 때문에 송이만의 문화적인 특징에 있어 약간의 이질감이 있어서 여행이 사실 힘들었지만, 밤에 자기 전에 송이가 자기 이야기들을 꺼내 놓으면서 같이 울고 그랬어요. 그러고 나니까, 그 차이가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되더라고요. 그 아이가 살아온 생을 알게 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상처와 시련들이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공감을 만드는 장치예요. 그래서 이 상처에 대한 관점을 이번 영화에서 새롭게 조명하게 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어요.          

 

Q, 예술 분야에서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동대 홍보대사로서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추: 크리스천들의 강점은 진정성이죠. 물론 복음의 진리를 알릴 수 있는 기독교 콘텐츠도 필요하지만, 복음을 세상의 언어로 탈바꿈한 영화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제가 이 영화를 하면서 느낀 게 오히려 비크리스천들이 더 많이 울고, 극찬을 하시더라고요. 크리스천들은 이러한 가치나 의미를 늘 어렵지 않게 접하고 살잖아요.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 의미를 굉장히 잊어버린 상태예요. 그들 안에 하나님이 심어 놓으신 양심을 깨닫게 하고 자극할 수 있어야 해요. 또, 웰메이드 해야 한다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크리스천 예술가들이 이 부분에 있어 약할 수 있거든요. 우리가 하나님과 공동 창조를 할 경우에, 훨씬 더 창의적인 콘텐츠들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해요. 한동대에서 많은 학생들이 이 분야에 나와주었으면 좋겠어요.

 

 

“그 아이들에게 우리가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천리마운동: 생산증대를 겨냥한 북한의 노동강화운동.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와 같은 속도로 사회주의경제를 건설하자는 뜻.

사진제공 커넥트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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