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 의해서’라는 이유로 몇몇 사람들은 병역의 의무를 거부해왔다. 국방부에 따르면, 매년 500여 명의 사람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라는 이름으로 전과자의 길을 택했다. 하지만 지난 6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11월 1일에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무죄 판결이 나왔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와 대체복무제를 둘러싼 논의는 현재 진행형이다.

 

헌법 속 양심의 의미

양심적 병역 거부란 개인의 신념에 따라 군 복무를 거부하는 행위를 뜻한다. 양심적 병역 거부는 대한민국 헌법 제19조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에 근거한다. 이때 양심(良心)은 한자의 뜻대로 ‘선한 마음’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서구권의 표현인 ‘양심의 자유(freedom of conscience)’를 그대로 차용한 표현이다. 즉,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신념과 종교, 마음의 목소리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르면, 국가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병역을 받아들이는 것은 ‘양심적 병역이행’이며 자신의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양심적 병역 거부’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법률적 논의

양심적 병역 거부는 2002년부터 법률적 논쟁의 대상이었다. 헌재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대해 총 세 차례 합헌의 입장을 내세웠고, 대법원은 2004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를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해왔다.

병역법에 대한 첫 위헌심판제청은 2002년에 이뤄졌다. 당시 서울남부지원 부장판사였던 박시환 전 대법관은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대해 ‘병역거부자에 대한 예외 없는 처벌을 규정한 현행법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대한 헌재의 첫 판결은 2004년 8월에 나왔다. 헌재는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란 개인의 양심을 고려하고 보호하는 것을 국가에 요구하는 권리’일 뿐 ‘법적 의무의 이행을 거부하거나 대체 의무 제공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님’을 밝혔다. 같은 해 10월과 2011년 8월에도 헌재는 같은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7년이 지났지만,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헌재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2018년 6월 28일 헌재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대해 ‘합헌’이라고 판시했다. 헌재는 해당 조항이 병역 자원의 확보와 병역 부담의 형평을 가하는 것으로 입법목적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한편,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제5조 제1항에 대해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국회는 2019년 12월 31일까지 병역법을 개정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유죄 판결을 유지해오던 대법원은 14년 만에 입장을 바꿨다. 11월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 모(34) 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개인의 양심과 종교적 신념을 근거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국가가 개인에게 양심에 반하는 의무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기본권에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대법원은 지난 6월 헌재의 결정에 대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할 것인지는 대체복무제의 존부 논리와 필연적 관계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11월 1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선고를 반대한 박상옥 대법관 등 네 명은 ‘기존 법리를 변경해야 할 명백한 현실적 변화가 없음에도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양심과 안보, 충돌과 공존

양심적 병역 거부가 ‘양심이라는 개인의 권리와 안보라는 공익의 충돌’이라는 전제에 대해서도 여러 입장이 나오고 있다.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전까지, 대법원은 양심이라는 개인의 자유가 타인의 기본권, 다른 헌법적 질서와 저촉될 때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자유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즉, 양심의 자유를 병역 문제와 관련해 인정하게 될 경우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다른 사람들의 기본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강태경 부연구위원은 9월 형사정책연구 제29권 제3호에서 위 전제를 바탕으로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해당 연구에서는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판이한 관점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존 롤스(John Rawls)의 <정의론>을 인용한다. 롤스는 ‘양심적 거부(conscientious refusal)’가 개인적인 신념에 기초하며 일반적 도덕관과 대립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강 부연구위원은 “결국 다수의 도덕관인 안보와 충돌하는 소수의 도덕관을 어디까지 존중하고 이를 실현하도록 관용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밝혔다.

반면, 개인의 권리와 공익의 충돌이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는 입장도 있다. 권리와 공익의 충돌 없이도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8월 30일 이뤄졌던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정당한 사유라 주장한 피고인 측 변호인은 ‘매년 발생하는 500여 명의 거부자를 대체복무제를 통해 활용한다면 이를 다른 공익으로 환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마련한다면 인권을 보호할 뿐 아니라 사회에 적잖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의미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재승 교수는 이에 대한 일례로 독일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모병제로 전환되며 대체복무제가 폐지되기 전까지, 독일의 대체복무자들은 사회적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저임금의 노동력을 제공했고 사회적 협력, 봉사, 연대에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했었다”라고 밝혔다.

 

대체복무제에 대한 정부와 시민단체의 동상이몽

헌재가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판결을 지난 6월에 내린 이후, 이들에 대한 대체복무제 논의가 가속화되고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체복무제는 종교적 사유나 개인적 신념 등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사회복지, 사회 공익 등의 활동을 통해 군 복무를 대체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는 일반 *보충역과 구별되며 양심적 병역 거부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국방부는 11월 14일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 대체복무제 도입 방안 검토’를 발표했다. 국방부는 이번 검토안에 대한 여론을 반영해 12월 중 대체복무에 대한 입법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는 40일간 이를 입법예고한 이후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의결, 국회 제출 및 통과 절차를 거쳐 2020년 1월 1일 이를 시행할 예정이다. 검토안에 담긴 내용은 ▲복무 기간 ▲복무 분야 ▲복무 형태 ▲심사기관 등이다. 국방부는 복무 기간에 대해 2021년 말 18개월로 단축되는 육군 복무 기간의 두 배에 해당하는 36개월로 추진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는 병역기피 수단으로의 대체복무 악용 방지와 산업기능요원, 궁중보건의사 등 다른 대체복무자와의 형평성 유지를 위해서다. 현재 산업기능요원과 궁중보건의사의 복무기간은 34~36개월이다. 대체복무 분야는 군 복무환경과 가장 유사한 환경인 *교정시설로 단일화하고, 복무 형태도 합숙근무만 허용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국방부는 대체복무제가 안정적으로 정착한 이후 다른 복무 기관 및 분야 확장을 고려할 계획이다.

여러 시민·인권단체는 대체복무 논의가 징벌적 방향으로 흐른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병역 거부자들이 교정시설에서 수행할 업무가 이전까지 이들이 감옥에 수감돼 해왔던 업무와 같기 때문이다. 또한, 고립된 교정시설에서 사회와 단절돼 합숙 복무를 할 경우 사실상 현역 복무를 하는 것과 같다고 강조한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53개 단체는 11월 5일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나라는 현역 복무기간 자체가 징병제 시행 국가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해 1.5배 이상의 복무기간은 20대 청년들에게 너무 가혹한 처벌과 차별이 될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민변, 군인권센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등이 발표한 ‘양심적 병역 거부 대체복무제 시민사회 안(案)’에는 ▲치매노인 돌봄 업무 ▲장애인 활동지원 업무 ▲의무소방 업무 ▲현역 1.5배 이내의 복무기간이 대체복무의 내용으로 제시됐다.

한편,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대체복무 여부를 판정하는 심사기구의 소관을 두고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정부는 국방부가 행정 업무만 지원하게 하고, 심사기구를 완전히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조항을 법 개정에 포함할 계획이다. 정부는 대체복무 심사기구 위원장을 외부 민간인에게 맡기고, 심사위원들도 타 부처 추천을 받아 구성할 예정이다. 대체복무를 신청한 사람이 심사위원회의 판정에 불복할 경우 재심을 요청할 수 있으나, 신청은 한 차례만 가능하다. 재심에서도 대체복무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통해 구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시민·인권단체들은 심사기구를 국무총리실 산하나 행정안전부 등 국방부와 분리된 부서 소관으로 두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병역 거부자의 신분이 군인이 아닌 만큼 군 산하 기구가 대체복무 심사와 관리·감독을 맡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시민·인권단체들은 ‘대체복무 심사는 독립적이고 공평한 의사결정기관의 권한이어야 한다’는 유엔인권이사회의 권고를 들어 독립적 심사기구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숫자만으로 보면 몇 백 명 수준인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분이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관계없는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문을 통해 “‘소수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반영하는 것이 관용과 다원성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참된 정신을 실현하는 길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대체복무제 시행까지 약 1년이 조금 넘게 남은 지금, 단순한 유·무죄의 판결을 떠나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개인의 ‘양심’을 대해야 하는지 고민해볼 시기다.

 

*병역법 제88조 제1항: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모집에 의한 입영 통지서를 포함한다)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일부터 다음 각 호의 기간이 지나도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1. 현역입영은 3일. 2. 공익근무요원소집은 3일. 3. 군사교육소집은 3일. 4. 병력동원소집 및 전시근로소집은 2일.

*병역법 제5조 제1항: 병역은 다음 각 호와 같이 구분한다. 1. 현역. 2. 예비역. 3. 보충역. 4. 병역준비역. 5. 전시근로역.

*보충역: 징병검사를 받아 현역 복무를 할 수 있다고 판정된 사람 중에서 병력수급 사정에 의하여 현역병입영대상자로 결정되지 아니한 사람과 공익근무요원, 공중보건의사, 징병검사전담의사, 국제협력의사, 공익법무관, 공익수의사, 전문연구요원,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 또는 의무종사하고 있거나 그 복무 또는 의무종사를 마친 사람 등을 말한다.

*교정시설: 수용자들의 권익 보호와 교정교육, 직업훈련 등 사회적응 능력의 배양을 통하여 건전한 사회 복귀를 도모하고자 설치 운영하는 시설. 일반적으로 교도소, 구치소 등을 의미한다. 다양한 법률에서 법령제정 취지를 고려하여 교정시설의 범위를 달리 정하고 있다.

 

조혜진 기자 chohj@hgupress.com

이하늘 수습기자 leehn@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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