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진 듯한 느낌이 달가운 사람은 없다. 조급함과 불안감을 필히 동반하는 부채감은 간혹 숨이 막힐 정도로 사람을 몰아붙인다. 모든 감정이 그렇듯, 부채감 역시 어떻게 유발된 것인지 모를 때가 많다. 함수의 값처럼 값이 딱딱 떨어진다면 설명하려는 자와 청자 모두 명쾌할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

아주 오랫동안 곱씹어도 원인을 누군가에게 설명하지 못할 때가 많다. 대신 곱씹는 지지부진한 과정 끝에 방향을 수정할 힘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부채감은 간혹 원동력으로 뒤바뀌기도 한다. 누군가로부터 혹은 사회로부터 느껴지는 부채감은 변화를 요구한다. 이전과는 달라질 용기와 결심이 꽃피우게 되는 것이다.

부채감을 가지지 않는 개인들이 모인 곳은 얼마나 삭막한 곳일까. 다들 너무나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해치워야 할 업무들이 쌓인 개인들이 발 벗고 나서 타인의 고통을 타개해 줄 순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픔을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이 사라진다면. 고통을 가한 장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고개를 돌린다면. 한 공동체 속에 있으면서 옆 존재의 아픔과 고통에 빚을진 듯한 느낌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의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부채감이 사라진 공동체는 구심력을 잃은 집단이다.

한동 공동체는 상실을 마주했다. 아니, 계속해 상실하는 중이다. 우리는 일부가 도려내 지거나, 이곳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을 심각하게 인지해야 한다.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이들이다. 그는 대학생, 젊은이, 사람의 모습이 아닐 수 있다. 주위를 향한 감각을 끌어올려 부채감을 마주해보자. 고민을 이어간다면 그 끝에 우리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돌파구가 실낱 같이 비춰지지 않을까. 기적처럼 공동체의 새로운 모습을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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