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 전문(前文)을 살펴보면,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한”다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갓 독립한, 최빈국의 첫 출발 선언치고는 거창한 포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참혹했습니다. 전쟁을 통해 더 나락으로 떨어졌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급반전이 일어납니다.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자 조선 중기 이후 수 백 년 동안 주자성리학의 부작용으로 인해 발현되지 못했으나 우리 국민 DNA에 내재되어 온 ‘도전정신’이 발휘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1996년, 전쟁 후 40여 년 만에 이제는 OECD 즉, 선진국 클럽에 가입하는 세계사적 기적을 이루어냅니다. 선조들이 제헌헌법을 통해 꿈꾸었던 나라가 50년 만에 드디어 어느 정도 현실화된 것입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것처럼, 정치·경제적 성장을 압축적으로 이루다 보니 갈등과 혼란이 심한 것도 사실입니다. 최근 아산정책연구원 함재봉 원장이 ‘한국사람 만들기’ 라는 책을 통해 지적했듯이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정체성과 가치관은 단일하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성장과정 당시의 대한민국의 경제 수준에 따라 각기 다른 정체성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주의, 법치주의, 권력분립,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존중과 대화와 토론, 타협과 공존... 이런 가치들을 배워왔고, 외치기도 했지만, 사회 전체의 분위기상 어린 시절부터 정서적으로 체화해오지는 못한 것이 그동안의 현실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1990년 전후에 태어나고 1996년 OECD 가입 전후에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청년 세대, 선조들이 제헌헌법을 만들며 꿈꿨던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새로운 사람들, 바로 실질적 의미에서 ‘제헌헌법 1세대’, ‘제헌헌법의 아이들’은 그 전 세대와 확연히 다릅니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그 전 세대에 비해 정치적 진영논리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들은 선배세대들이 청년 시절 겪었던 굴곡지고 가슴 아픈 한국 현대사의 트라우마를 경험하지 않았기, 남북한의 인권 문제를 자연스럽게 보편적 인권의 기준에서 바라보며 북한의 비극적인 인권침해의 참상에 대해 깊이 가슴아파할 수 있으며, 세계시민으로서 세계 각국의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입니다. 영화 ‘국제시장’, ‘연평해전’, ‘변호인’, ‘1987’에 모두 감동을 받으며, 북한의 비참한 인권 문제부터 시리아 내전 난민 문제, 홍콩 민주시위까지 현재 이 지구상의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세계시민으로서 비통해하고 가슴 아파할 줄 압니다. 이미 이들은 세계시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간 존엄’이라는 세계시민적 보편 이성의 관점을 체화했기에 20대들이 비참한 인권침해를 초래한 현 북한 정권에 대해 어느 선배세대와 비교해서도 가장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또한 국가주의, 전체주의, 획일적 민족주의적 담론에 강한 거부감을 보입니다. 너무도 당연합니다. 우리 헌법은 단순히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제정된 것이 아니라 수천 년 인류 문명사를 통해 선각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자유주의’, ‘민주주의’, ‘공화주의’의 가치를 담고 있으며, ‘인간의 존엄성 존중’을 최고의 가치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익이라는 최상급 공동체적 가치도 대화와 토론, 설득을 바탕으로 한 개인의 자발적인 존중과 헌신으로 유지되는 것이지 개인의 헌신을 당연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 헌법 정신을 배우며 자라난 세대가 바로 제헌헌법 세대인 것입니다. 이들은 통일의 이유로 민족적인 이유보다는 ‘북한 주민의 자유와 인권의 보장’, ‘북한주민도 우리처럼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받는 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기에 우리가 도와주어야 한다’는 이유에 더 공감합니다.

 

물론, 이러한 새로운 세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지난 100년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이만큼의 자유와 풍요를 물려주기 위해 각자의 시대적 사명을 위해 선배세대들이 눈물겹게 헌신하며 노력해왔기에 제헌헌법의 아이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헌헌법이 꿈꿔온 헌법적 가치관으로 어린 시절부터 무장한 새로운 세대, 이 새로운 세대가 이제 20~30세 정도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도 이들의 파트너가 될 새로운 세대가 자라고 있습니다. 남한이 OECD에 가입한 1996년, 북한은 정반대로 국가 시스템 붕괴로 인해 수 백 만 명이 굶어죽었습니다. 이 시기에 성장기를 보내 북한의 현 체제에 대한 충성도가 윗세대와 비교할 때 현저히 낮고 상대적으로 비판정신이 강한 ‘장마당 세대’가 바로 그들입니다. 그리고 이들도 이제 20~30세가 되었습니다.

 

‘제헌헌법 1세대’가 성장하면 지금의 우리사회는 달라질 것입니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장마당 세대가 북한 사회의 주류가 되는 10년, 20년 후의 북한은 지금과는 매우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남북의 이 두 세대가 새로운 한반도의 역사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이들은 통일 문제가 단지 민족적인 이슈가 아니라 수 천 년 간 흘러온 인류 보편의 역사 발전이라는 사실, 즉, 인간 존엄성 존중, 압제로부터의 해방, 자유 회복의 역사가 이 한반도 북단에서도 이루어지는 인류 문명사의 발전임을 전 세계에 선포하고, 동료 세계시민들과의 공감대를 이루며, 전 세계의 지지와 응원을 이끌어낼 것입니다.

 

세계 속에서 당당히 어깨를 펴고 자라난 그 기상과 정신으로 이들이 그들 세대에 주어진 사명을 굳건히 잘 감당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앞으로 10년, 20년 이 사회를 지탱하고 버텨주며 이들이 역사의 주역으로 성장하기 위한 토대를 만들어줄 책임, 그것이 모든 선배세대에게 맡겨진 시대적 역할이자 준엄한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취업 등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이겠지만 한동의 청년 여러분들이 담대한 마음으로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고 더욱 힘을 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땅의 희망입니다.

 

 

 

 

 

 

 

 

법학부 송인호 교수

한동대 통일과 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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