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하루에도 몇 번씩 장애가 손해라는 생각과 나의 정체성을 이루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장애를 다룬 수많은 영화 중에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영화가 얼마나 있을까. 현진식 감독의 다큐멘터리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는 지적장애 기타리스트 김지희의 꿈과 그녀를 돕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극복 없이, 편견 없이 담고 있다.

 

사진 김정원 기자 kimjw@hgupress.com

 

평범한, 그러나 평범하지 않은 기타리스트

영화는 기타리스트 김지희의 아름다운 기타선율로 시작된다. 지하철, 길가, 무대에서 공연하는 그녀에게 뛰어난 기타실력 외에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하고 5분이 지나도록 아무 말이 없어, 관객들은 그녀가 조용하고 내성적이리라 짐작한다. 한참 후 지희 씨가 입을 열어 말을 하면서, 그녀가 소통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관객은 알게 된다.

김지희 씨는 열 세살에 지적장애 2급을 판정 받았다. 그녀의 산수는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이며 자기 생각을 말하기위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타를 잡기만 하면 그녀의 수줍은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답답한 마음을 기타로 표현하듯 그녀의 연주는 마치 이야기하는 것 같다. 지희 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빠에게 코드 몇 개 배운 것을 계기로 기타를 꾸준히 연습해왔다. 그렇게 갈고 닦은 실력으로 바쁜 공연 스케쥴을 소화하던 어느 날, 그녀에게 한 가지 새로운 목표가 생긴다. 바로 자신의 곡을 만드는 것.

음표의 길고 짧음을 아는 것은 창작의 기본이지만 지희 씨에겐 아직 어려운 개념이다. 자기를 표현하는데 익숙지 않은 그녀는 악보를 보고 따라치는 건 뛰어나지만, 그 곡을 스스로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런 지희 씨에게 자신의 곡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 같아 보인다. 지희 씨의 부모님도 지희 씨가 상처를 받을까 작곡을 시도하는 것에 쉽사리 동의하지 못한다.

“여기서 멈춰도, 이 모습 그대로 멈춰도 상관없어요”
-지희씨의 어머니 이순도 씨-

지희 씨의 엄마이자 단짝 친구인 이순도 씨는 지희 씨의 무대가 끝나면 꼭 “잘했어. 지희야” 라며 안아준다. 중간에 발을 다쳐 움직이기 힘들어도, 지희씨의 공연 스케쥴을 위해 순도 씨는 절뚝이며 공연을 따라다닌다. 지희 씨가 힘들어할 때마다 순도 씨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멈춰도, 이 모습 그대로 멈춰도 상관없다고. 순도 씨는 작곡을 하고 싶다는 지희 씨의 결심 또한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엄마의 마음을 느꼈기 때문일까. 지희 씨는 기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작곡을 시작한다. 고심 끝에 지희 씨가 만든 곡의 이름은 ‘엄마의 뒷모습’이다.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기

영화의 본래 제목은 <리틀 걸 블루>였다. 니나 시몬(Nina Simone)의 노래이기도 한 <리틀 걸 블루>는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한 소녀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안아주는 노래이다. 현진식 감독은 본래 제목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지희 씨를 바라보는 자신의 심정과 닮았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지희씨를 불쌍하고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 봤던 현 감독은 촬영을 진행하던 도중 심정의 변화를 겪는다.

현 감독은 감정표현을 어려워하는 지희 씨를 위해 촬영 도중 지희씨를 바닷가로 데려갔다. 소리 한 번 지르면 표현하는 것이 더 수월할 것이라는 나름의 배려이자 묘책이었다. 그러나 바닷가에서 촬영을 하던 도중 지희 씨의 표정이 너무 좋은 것을 본 현 감독은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그날 촬영을 하면서 아차 했던 게, 지희 씨는 지금까지 항상 감정표현을 해왔더라고요. 다만 그 크기가 조금 작았어요. 좀 더 크게 말해봐라, 기타도 세게 쳐보라 하는데 그 ‘크기의 기준이 있나?’하는 생각이 든 거죠. 기준이라는 건 우리 고정관념이에요. 작게 말하는 사람에게 그 크기로 맞춰줄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느냐는 거죠. 그때 정말 화끈거렸어요. 그때 딱 생각이 났어요. 제목에 문제가 있다, 장애를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구나. 그래서 주인공의 주체적인 입장에서 펼쳐지는 제목을 찾았고, 김광석의 ‘나의 노래’에서 빌려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라고 최종적으로 정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지희 씨는 또 한 번 바다를 찾아간다. 넓게 펼쳐진 바다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을 카메라는 잠잠하게 담는다. 어떠한 편견이나 색안경 없이, 기타리스트 김지희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멀찍이 떨어져 지희 씨를 바라보는 카메라에 더는 걱정과 우려가 담겨있지 않다.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그녀가 알아서 잘하리라는, 묵직한 신뢰만이 담겨있을 뿐이다.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 현진식 감독 인터뷰

현진식 감독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뮤지션이며, 사진작가다. 록밴드 ‘파울로시티’의 기타리스트이며, 올해 초 교토에서 그의 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영상 일을 시작한 그는,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편집으로 참여하면서 다큐멘터리를 처음 접했다.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는 그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사진 김정원 기자 kimjw@hgupress.com

 

Q 두 번째 연출작으로 ‘뮤지션’을, 그리고 ‘김지희’를 주제로 잡은 이유가 있나요?

현진식 감독(이하 현 감독): 다큐멘터리를 시작할 때부터 예술가를 소재로 한 세 가지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커피와 기타리스트, 사진작가. 첫 번째 작품으로 커피 이야기 <바람커피로드>를 만들었고, 이번에 개봉한 두 번째 작품이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입니다. 언젠가 좋은 소재가 나오면 기타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는데, 우연히 SNS를 보다가 젊은 기타리스트가 연주를 하는 영상을 봤어요. 거칠고 배운지 얼마 안 된 티가 나는 연주인데, 감성이 섬세한 게 느껴졌어요. 자료를 더 찾아보니까 장애라는 다른 배경도 알게 됐고, 음악 휴먼 다큐멘터리 주인공으로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영화가 지희 양의 성장스토리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성장스토리이기도 하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 감독: 성장스토리라고 이야기한 것은, 제 장애 인식의 변화 때문이에요. 영화가 처음 기획될 때는 음악으로 장애를 극복하는 뮤지션의 이야기였어요. 그것이 장애가 있지만, 누구보다도 음악을 사랑하는 기타리스트가 음악적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로 바뀐 거죠. 저는 지금 40대 중후반의 기성세대인데, 저희 세대들은 성인지 감수성 이런 것에 뒤처져 있는 세대예요. 저 또한 페미니즘부터 시작해 이런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확신이 없었어요. 근데 영화를 촬영하면서 굉장히 열리기 시작했어요.

기성세대들이 변화하는 방법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틀릴 수 있다 생각하면, 그 이후로 학습이 되거든요. 영화를 계기로 이걸 배웠어요. 어떻게 보면 40여 년 동안 키도 크고 성장을 했지만, 제 평생 가장 많은 성장을 했던 시기가 이 영화를 촬영한 때인 것 같아요. 이 영화가 아니었으면 저는 굉장히 꼰대로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장애에 대한 인식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테니까.


Q 장애인을 배려한다는 마음과 행동이 어떤 순간엔 동정과 연민, 때론 폭력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걸 분별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현 감독: “공감. 공감이죠. 연민이란 것은 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바라보는 자기에게 도취해 있는 경우가 많아요. 공감이 빠졌을 때 그래요. 상대를 공감하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을 도와주는 나, 저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나가 포인트인 거죠. 근데 공감을 하기 시작하면, 뭘 해야 할지가 조금 달라져요.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는 것이라고 하잖아요. 수용하는 대상이 본인뿐이겠어요? 주변 사람들도 있는 거죠.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니까 도와주려 하는 거예요.” 저도 지금 제 왼쪽 귀가 잘 안 들려요. 왼쪽이 안 들리는 걸 극복의 대상으로 보면, 어떻게든 들어봐 하면서 왼쪽에서 말하려 할거에요. 수용이 되면, 내가 잘 들을 수 있는 위치에서 말하겠죠.

 

Q 영화를 보게 될 관객들, 한동대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현 감독: 하고 싶은 말은 없어요. 그런 말을 할 위치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다만, 그 당시 나에게 돌아간다면 포기해도 괜찮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제 인생에서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30대 초반이에요. 그때 하고 있던 영상 프로덕션을, 어떻게든 살려 보려고 이 악물고 버텨서 오히려 하고 싶은 것의 시기만 늦어졌어요, 그때 포기했으면 영화감독 데뷔가 40대 중반보다 10년은 앞당겨질 수도 있었을 거에요.

제가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에 하나가 녹음에 실패하는 장면이에요. 선생님이 녹음하는 지희 씨에게 가서 포기하는 게 좋겠다고 설득하잖아요. 그때 지희 씨는 포기하는 이유를 연습부족이라 얘기했는데, 그게 너무 좋았어요. 장애 핑계를 안 대는 것이. 연습이 부족한 거야. 그때 지희가 성장했구나 느꼈거든요. 연습을 더 해서 다시 재도전하겠다는 것. 그날은 솔직히 실패에요. 스튜디오 돈 날리고, 시간 손해 봤고. 근데 그 실패로 인해 지희 씨는 더 성장할 수 있었어요.

이 영화를 통해서 지희 씨가 기타리스트가 되는 법을 익혔다면, 사실 저는 어른이 되는 법을 익혔던 것 같아요. 지희도 기타리스트로선 아직 멀었어요. 저도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겠지만, 좀 더 쓸 만한 어른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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