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을 추진하고 있었던 중국 정부는 일국양제라는 통 큰 제안을 통해 동서양을 잇는 금융과 무역의 허브였던 홍콩 반환을 완수했다. 당시 덩샤오핑은 홍콩의 점진적 민주화와 고도자치, 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릴 것이라 다짐하며 비민주적 정권으로의 이양을 앞두었던 홍콩인의 두려움과 반환 협정의 당사국이었던 영국의 정치적 부담을 덜었다. 이후 중국의 부상이 본격화되며 중국은 주권국으로서의 정치적 우위와 압도적 경제력을 바탕으로 홍콩 관리를 강화했다. 일국양제 재해석과 경제적 통합정책은 그 구체적 방안으로 이 과정에서 홍콩 정재계와 사회의 친중화 현상이 심화되었다.


홍콩인의 고민은 이것이다. 중국의 홍콩 정책을 수용하며 경제적 수혜를 누리는가 혹은 자치 강화와 민주 확대를 향한 정치개혁을 요구하는가이다. 현재까지 홍콩은 주권국 중국의 일관된 정책 그리고 안정과 번영을 추구하는 홍콩 시민의 선택에 의해 후자를 위한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자의 추세를 걸어왔다.


2014년 우산시위는 정치개혁 약속을 철회하는 중국 정부와 홍콩 대륙화 현상에 대한 홍콩 시민의 강력한 저항이었다. 경찰의 후추 스프레이를 막기 위해 시위대가 펼쳐 들었던 노란 우산, 이들이 생활했던 형형색색의 텐트, 이들이 만들었던 다양한 조형물의 강렬한 색감은 금융과 쇼핑의 허브, 화려한 홍콩 이면의 낙후한 정치제도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중국의 통제 하에 있는 비민주적인 정치제도, 이것이 야기하는 사회경제적 모순에 대한 홍콩인의 문제의식에 공감했으나 시위는 중국 정부의 강경한 입장과 정치개혁의 낮은 가능성을 수용하는 시민의 지지 철회로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대다수의 홍콩 시민은 홍콩 정책에 다시 적응한 반면 일부 젊은이들은 홍콩의 자치 나아가서 독립을 추구하는 본토주의자로 성장했다.


대만에서 여자친구를 살해 유기하고 홍콩으로 귀국한 찬퉁카이(陳同佳) 사건과 이후 홍콩 정부가 입법을 추진한 ‘범죄인 인도 법안 개정안(Hong Kong Extradition Law)’은 2019년 송환법 시위의 직접적 촉발원인이었으나 홍콩인의 누적되어 온 정치적 좌절감은 저변의 근본적 원인이다. 또한 독자적으로 작동하는 홍콩의 법치와 사법체계로부터 비민주적인 정권으로 송환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홍콩인의 잠재적 두려움을 증폭시켰고 거대한 시위의 동력이 되었다.


시위의 과격화와 폭력성은 그간 홍콩에서 있었던 주요 시위와 이번 시위 간의 가장 큰 차이이다. 이것은 사랑과 평화를 기치로 삼았던 지난 시위의 실패, 홍콩 정부의 강경 진압에 대한 저항, 중국의 홍콩 정책에 대한 누적된 불만 마지막으로 우산시위 과정에서 성장한 본토주의자들의 활동에 기인한다. 홍콩 정부는 이에 송환법 입법안 철회를 공식 발표했으나 시위대는 시위의 근본적 원인은 중국의 홍콩 정책이라고 지목했고 시위의 목적을 홍콩 민주화에 관한 ‘5개의 요구(5 demands)’로 전환하며 시위 동력을 유지했다. 이후 시위대와 홍콩 정부 나아가서 중국 정부와의 대립과 갈등이 고조되었고 이 과정에서 홍콩의 도시 기능이 훼손되고 수많은 부상자가 속출했다.


가장 주목할 사안은 홍콩 사안을 국제화하고자 했던 시위대의 노력에 대해 2014년 우산시위 때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언급과 행동을 자제했던 국제사회가 호응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중국을 본격적 경쟁의 대상으로 상정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정책 때문이다. 중국의 약한 고리(weak chain)인 인권은 미국의 대중국 주요 견제 수단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과 UN 2019년 연설 등을 통해, 미 의회는 ‘홍콩 인권법’을 통해 홍콩에 주목하고 있으며 미국의 이와 같은 기조에 따라 영국과 독일, 각국의 시민단체들이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고 있다. 중국의 대응 역시 강경하다. 초반부터 인민해방군을 홍콩 인근에 집결시키며 홍콩 사안에 대한 강경 입장을 확인했던 중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반응을 내정간섭으로 간주하고 비난하고 있으며 홍콩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입법을 추진 중이다. 시진핑 주석 역시 홍콩 행정장관 접견과 연설을 통해 홍콩 관리에 방식에 대한 방침을 재확인했으며 중국을 분열시키는 시도는 분골쇄신의 결과를 맞이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러한 점에서 현 시점 홍콩 시위는 홍콩의 자유와 법치를 지키고자 하는 홍콩인과 홍콩의 이탈과 혼란을 막고자 하는 중국 정부 간의 갈등의 차원을 넘어 미중경쟁 즉 강대국 국제정치의 주요 사안으로 편입되었다.


현시점 일군의 학생들은 이공대에 갇혀 경찰의 진압에 대응하고 있으며 이들의 안전 확보와 물품 전달을 위해 시민들은 분투하고 있다.


홍콩 정부는 강경한 진압 의지를 피력하는 한편 중국 정부의 지원을 기반한 경제 회복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홍콩 시민은 과격한 시위와 진압, 부상의 정서적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유와 법치에 대한 민감함을 유보한 채 홍콩의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홍콩을 전망할 수 있을까.


종교개혁 이후 크리스찬은 ‘너는 내 아들이라’고 하신 하나님과 나의 독점적 사랑의 관계를 확인했고 세상의 어떠한 권력이 나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유롭게 믿을 권리를 침탈하지 못하도록 투쟁해왔다. 인류가 이후에 걸어온 길은 천부인권인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자와 빼앗고자 하는 자들 간의 치열한 투쟁이었다. 자유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치이기 때문에 인류는 더 많은 사람이 자유를 누리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여기까지 왔고 지금의 홍콩은 새로운 전장이다.


지금 홍콩의 청년들은 스스로를 에반게리온의 신지라고 여긴다. 이들은 왜 나지? 왜 우리가 저 거대한 힘에 대항하여 이 일을 해야 하지? 라는 끝없는 질문 속에서도 자신들을 자유를 향한 투쟁을 위해 선택받은 자로 여기며 그 역할을 감당하기를 다짐한다.


자유는 공기와 같다. 눈에 보이고 매일 고맙다고 인사하지 않으나 자유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는가. 하나님을 자유롭게 사랑하고 찬양하고 복음 전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있어서는 더욱 그렇지 않은가. 화려하고 번영한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홍콩 시민의 혼란스러운 일상을 바라보며 선대의 기도와 헌신으로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소중함을 다시 기억한다. 또한 빛도 시선도 없는 곳에서 자유를 향해 외로운 전쟁을 하고 있는 자들을 위해 간절히 중보한다.

 

 

국제어문학부 김지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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